본문 바로가기
  • 완결 1권

    2018.03.16 약 14.3만자 3,500원

이용 및 환불안내

작품소개

“당신을 업고 이 산에 들어온 순간부터 제게는 여인이었습니다.”

낙산의 날개 없는 새로 살았다.
새로 태어나 땅을 걸었다.
마음에 무언가 피어나기를 빌었다.
텅 빈 허공에, 꽉 차게 피어나는 꽃을 기다렸다.


“삯을 치를 거야. 나는 그러기 위해 온 것이니.”

날개 없는 새를 오랜 시간 기다렸다.
설원의 꽃나무 밑에서 깨어날 때까지.
피할 수 없다면 끝맺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홀로 걷던 길이 더 이상 자신만의 길이 아님을 뒤늦게야 알았다.



-본문 중에서-


“이거 맛있다? 먹어 보았느냐?”

고개를 저었다. 나과가 먹는 것인 줄 몰랐다. 여인은 능숙하게 둥근 꽃 속에 숨어 있는 열매를 꺼내더니 즙이 뚝뚝 떨어지는 손 그대로 단위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단위가 몸을 뒤로 빼려는 데 쓰읍, 하고 눈을 부리부리 뜬다.

“날개!”

젠장. 그가 입을 벌리자 그 안으로 흰 손가락이 쏙 들어온다. 보기와 달리 물컹한 열매를 씹는 사이 단위의 표정이 점차 놀랍게 변했다.

“그렇지? 맛있지?”

꿀보다도 달았다. 세상에 이런 맛도 있나. 신이 나서 하나, 둘, 계속 열매를 까 단위의 입에 넣어 준다. 마냥 받아먹다가 이거 자기가 먹고 싶어서 따오라 한 것 아니던가, 싶어 손을 밀어냈다.

“드세요. 많이 먹었습니다.”
“됐다, 난 이거나 먹을란다.”

그러고는 단위의 입 속에 들어갔던 손가락을 쪽, 하고 빤다. 즙이 묻은 것을 말끔히 핥아 먹는 것을 보며 얼굴이 붉어진 것은 오히려 그였다. 하는 것은 저인데 왜 부끄러운 것은 내가 그러지. 애써 의연한 척 해보려 해도,

“단위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눈웃음을 치며 나과 하나를 더 내민다.

“먹거라?”

이제는 손이 손으로 안 보인다. 어째 어린놈 데려다 장난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거부할 방도가 없는 그가 입술을 열었다. 분명 손에 묻은 것을 다 먹었는데도 더 달게 느껴진다. 차가운 여인의 손이 얼음 같았다. 무더운 밤에 느끼는 시원함이 식감을 좋게 만들었다.
달아. 너무 달다.
마지막 남은 나과까지 그의 입 속으로 들어가고 여인은 손에 묻은 것을 또 핥아 먹고. 고개를 푹 숙인 단위를 보며 깔깔 웃는다.

“너 그러면 안 된다고 하였지? 다 큰 사내놈이 그래서는 나 같은 이에게 놀림 받는단 말이다. 그러다 신부는 어느 세월에 얻으려 그래?”

남이야 신부를 얻든 말든, 이라는 말이 목까지 쳐 올랐다. 여인은 나과의 즙만 먹고는 배가 부른지 나른하게 누웠다. 산채에 온 후로 날로 물이 차는 것처럼 낭창해지는 것 같다.

“그것밖에 안 드십니까?”
“왜, 아쉬우냐?”

무얼 먹는 걸 본 적이 없어 순수하게 물은 것인데 저쪽은 무슨 요녀처럼 받아친다. 입을 꾹 다무는 단위를 보며 여인이 싱글벙글 웃는다.

“난 안 먹고도 잘 살아.”
“그래도, 너무 안 드시는데.”
“괜찮다. 이 몸은 아주 고귀하여 음식 대신 이슬만 먹어도 산단다.”
“…….”
“믿으라니까?”

또 눈을 부라린다. 찍소리도 못할 처지라 그냥 끄덕끄덕. 범계는 늘 방을 알뜰살뜰 치우는 데 여인은 옷도 여기저기 벗고 신도 벗고 왜인지 정말 모르겠지만 창문 곁에는 주전자도 뒹굴어 다니고…… 이 방을 범계가 본다면 또 한 차례 분노가 쏟아질 것이라는 데 다리 한쪽도 걸 수 있었다.

“좋구나. 이리 마음 편히 있어 본 게 대체 몇 년 만인지.”

기지개를 쭉 펴고 나른하게 말한다. 그 얼굴이 정말 편안해 보였다. 단위가 말없이 자신을 쳐다보자 이내 백탁의 눈이 자신을 향했다. 그러고 옆을 툭툭 친다.

“베개 좀 하여라. 잠 좀 자야겠다.”

다가가 앉으니 그의 다리를 베고 몸을 웅크린다. 저보고 어린애, 어린애 하지만 하는 짓만 봐선 이쪽이 더 어린 것 같은데. 범계에게 하는 걸 보면 분명 둘이 동기인 것 같지만…… 그렇지만 단위에게 하는 것을 보면 영 그런 생각이 안 든다. 이리 제멋대로 구는 이는 처음 본다. 날개 때문에 책이 잡혀 하는 것이긴 했지만 해달라는 걸 보면 죄다 어린 누이에게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고른 숨소리를 내며 새근새근 잠이 든 옆얼굴이 투명했다. 긴 머리카락이 창밖에서 부는 밤바람에 날려 얼굴을 가렸다. 무의식중에 그것을 쓸어 넘겨 주던 단위의 손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린다. 그의 품에 안겨 정체도 모를 물줄기에 쫓길 때도 이런 표정이었다. 짜증스럽고 무섭고 악독하게 떨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보는 표정.
나는 날개밖에 관심이 없는 것 아니었나.
한데 여인을 쫓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어리광이 많은 이가 초연한 얼굴로 피해 다니는 게 뭔지. 자포자기한 목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뭔지 알면 막아 줄 테냐?’

거추장스러운 여인. 범계 입으로 애물단지 소리를 몇 번이고 하게 만드는 여인. 그러니 얽힌다면 평생토록 고생이겠지. 어차피 막아 줄 재주도 없고. 그렇지만 날개가 생기면,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면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높이 날면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던데.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튼 생각. 만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그럼에도 쏟아지는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는 것이 싫어 몇 번이고 손이 닿게 만든다. 여인은, 자신에게 늘 할 일을 준다. 필요로 한다. 물 흐르듯 제자리를 찾게 만든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단위는 조금 무서워졌다.
왜 나를 위라고 부르셨습니까. 왜 내 창상에 그리 관심을 보이십니까.
……왜 꼭 내게만 제멋대로 군다는 겁니까.
묻고 싶던 질문은, 그래서 이번에도 목 안으로 깊게 숨고 말았다.



목차

<1>
<2>
<3>
<4>
<5>
<6>
<7>
<8>
<9>
외전1(선물)
외전2(도원)
외전3(머루)


Urabi

안녕하세요, urabi입니다.
설화와 판타지를 좋아하는 로맨스작가입니다.

리뷰

매주 베스트 리뷰어를 선정하여, 10,000원을 드립니다. 자세히 보기

리뷰 운영원칙
0 / 300등록

정가

소장

권당 3,500원

전권 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