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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권

    2019.03.20 약 10.3만자 3,000원

  • 완결 2권

    2019.03.20 약 10.4만자 3,000원

이용 및 환불안내

작품소개

한사랑은 원하던 대학, 원하던 학과에 합격했다. 그런데 꿈꾸던 대학 생활은 도둑놈 때문에 편할 날이 없다.


처음 본 그날부터 그는 뭔가를 뺏어 갔다. 피해 다녀도 소용없다. 도깨비처럼 갑자기 나타나서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것들을 뺏어 간다. 그녀의 허락도 없이 말이다. 그리고 그가 돌려준 것은 없다. 그것들은 쫓아다니며 돌려달라고 말하기도 어색한 작은 것들이다. 볼펜, 지우개, 머리끈, 립밤, 손수건, 먹던 음료수까지. 그 외에 생각나지도 않는 수많은 작은 것들이지만 어쨌든 그건 그녀 거다.


선배의 탈을 쓴 도둑놈이 유학을 떠난 날, 한사랑은 모든 신께 감사했다. 다시는 보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몇 년 후, 그 도둑놈이 갑자기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또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가져갔다.
이제 참지 않는다. 그에게 잡힌 인질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그날 도벽이가….



[미리보기]


“야, 야! 참아! 너 이제 1학년이야. 대선배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야이 가시나야! 너 최 선배한테 대들면 그 바닥 떠나야 해! 너희 과 선배들 하극상이라면 치를 떠는 거 이 학교에서 모르는 인간 없다고! 선배들한테 찍혀서 그 좁은 공사판 바닥에서 어쩌려고 그래!”

“야, 이 기지배 기절 좀 시켜봐! 기운 딸려서 허리 놓칠 것 같아!”

사색이 되어 소리를 질러대며 말리는 친구 세 명을 양팔과 허리에 매달고 나는 분노의 에너지를 폭발하며 캠퍼스를 가로질렀다. 수많은 시선이 집중됐지만 그따위 것에 신경 쓸 내가 아니다.

“이거 놔! 이제 못 참아! 도저히 못 참는다고!”

도둑놈을 단죄하고 이 대학을 버리리라. 꿈꾸던 대학 생활은 도둑놈 때문에 편할 날이 없다.

10월 말인데도 가을 한낮의 태양은 아침과 저녁의 쌀쌀함을 비웃는 것 같이 후끈했다. 지글지글 끓고 있는 내 뇌처럼. 친구들까지 매달고 걷다 보니 노란색 긴팔 후드와 청바지가 땀에 푹 젖었다.

마침, 공대 건물을 지나는데 도둑놈이 친구들과 나왔다.

“돌려주십시오, 선배님.”

단호한 어조와 서늘한 목소리. 폭발하기 직전의 분노가 억눌려 오싹하게 들렸다. 놀란 친구들이 후다닥 떨어져 팔을 비벼댔다.

도둑놈과 대선배 네 명이 내려오다가 두 계단 위에 우뚝 멈췄다. 놀란 얼굴로 쳐다보기만 하는 대선배들 가운데 서 있는 도둑놈에게 요구했다.

“선배님이 도서관에서 가져가신 음료수, 볼펜, 형광펜은 제 겁니다. 돌려주십시오!”

친구들 말에 의하면 2시간 전부터 도둑놈이 내 옆자리에 있었단다. 알았다면 절대 내 물건을 두고 그냥 일어나지 않았다. 도서관 한자리에 앉아 내리 세 시간 넘게 공부를 하다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내 물건을 도둑맞았다. 친구들 증언에 의하면, 집에서 얼려 온 오렌지 주스 1.5리터와 볼펜, 형광펜을 아주 자연스럽게 가져가서 도둑놈 물건인 줄 착각했단다. 꽝꽝 얼어서 맛도 못 본 오렌지 주스가 이제 좀 마실 만큼 녹았는데 그걸 통째로 가져갔다. 그리고 두툼한 노트에 달랑 볼펜 하나, 형광펜 하나를 끼어서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여분도 없었다. 친구들이 사준다고 합창을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처음 본 그날부터 그는 뭔가를 뺏어 갔다. 도깨비처럼 갑자기 나타나서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것을. 내 허락도 없이 말이다. 그가 돌려준 것은 없다. 단 하나도. 그것들은 쫓아다니며 돌려달라고 말하기도 어색한 작은 것들이다. 볼펜, 지우개, 머리끈, 립밤, 손수건, 먹던 음료수까지. 그 외에 생각나지도 않는 수많은 작은 것들이지만 어쨌든 그건 내 거다.

선배의 탈을 쓴 도둑놈이 빤히 나를 내려다보다가 계단을 내려왔다. 내 앞에 선 도둑놈이 팔짱을 꼈다. 옆에서 대선배들이 싱글거리며 한마디씩 거들며 웃었지만 나는 농담할 기분이 아니다. 말없이 빤히 내려다보기만 하는 도둑놈에게 그간 뺏긴 내 물건들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그것이 없어서 곤란했던 상황도 설명했다. 그리고 경고했다. 앞으로 절대 내 물건을 가져가지 말라고.

저놈에게 뺏긴 지 6개월. 이만큼 참았으면 많이 참은 거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사과 따위 도둑놈한테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눈도 깜박이지 않고 내가 말하는 동안 뚫어져라 내 눈을 쳐다보면서 집중하기에 조금 기대했다. 둘러싼 수십 명의 사람들을 의식해서라도 오늘은 내 물건을 돌려받을 수 있겠다고. 도서관으로 돌아가면 자리가 있을까, 하고 막 생각할 때였다.

“너 성격 지랄 같구나.”

도둑놈이 진심으로 감탄하며 내뱉은 말에 내 이성이 훌떡 날아갔다.

본능만 남은 내 짐승 같은 몸이 먹이를 낚아챘다. 도둑놈의 하얀 셔츠가 피로 흥건해질 때까지 팔뚝을 물고 놓지 않았다. ‘지랄’의 끝판을 보여줬다.

그 뒤로 내 앞에서 아무도 ‘지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내가 ‘지랄’을 한 건 그것 때문이 아닌데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건 도둑놈이다. 그 난리를 쳤으면 중단할 줄 알았는데 그는 여전히 내 것을 가져갔고, 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해 가을을 넘어 겨울 내내 코트 안에 반팔을 입고 다니면서 내 위대한 치력(齒力)을 홍보했다. 왼쪽 팔뚝에 난 선명한 잇자국 때문에 나도 돌려달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 도둑놈을 피해 다녔다. 나는 그놈을 ‘도벽이’라 명명하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놈이 대학교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문자가 날아왔다. 완벽하게 도둑놈을 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 가지 못했다. 나보다 많이 배운, 아이큐까지 높은 도둑놈의 수법은 언제나 몇 수 위였다.

‘도벽이’가 유학을 떠난 날, 나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모든 신께 진심을 다해, 우렁차게 포효했다.

“Thank you!”



충동적으로! 머릿속에 맴돌던 것들을 쓰기 시작한,
저주받은 몸뚱이를 끌고도 아직까지는 잘 살고 있는 인간.

누가 몇 살이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사소한 것까지 모두 잊고도 아직까지는 잘 살고 있는 인간.
하지만,
냉장고에 신발을 넣는 즉시 가차없이 이 몸뚱이를 내다버리라는
말을 문서화한 인간

이런 인간이기에,
절대 주변에 글을 쓴다고 말하지 못해
필명까지 ‘암행’이라고 지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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