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나는 영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그냥 사람일뿐이에요. - 강안나
어릴 때 영국으로 입양돼 운 좋게도 현재의 양부모님 밑에서 자라게 된다.
안나에게 있어 사랑은 두려움이다.
그래서 쉽게 사랑에 빠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감정을 표현 하는 것조차 어렵다.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 한번 흘린 적 없을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데 급급한 여자다.
그러다 이기적이고 고집불통의 정우주를 만나게 되는데······
남들 앞에서는 연기 작렬인 이중인격자라고 욕하다가 어느새 우주에게 빠져든다.
세계가 사랑한 영국 빅리그 동양 선수. - 정우주
일찍부터 선수 생활을 하느라 모든 것이 외로움으로 굳어져 버리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보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을 향한 이유 없는 친절과 미소를 오해하고 의심하고 부정한다. 건방짐과 독설은 그의 옵션이다.
그녀, 안나를 만나기전까지는······
-본문 중에서-
“또 시작이야?”
우주는 보지 않겠다는 듯 눈을 한번 가렸다가 천천히 손을 내린 후 다시 안나를 바라봤다. 그때의 첫 만남처럼 안나는 햇빛 속에서 고요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우주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젓고 안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안나는 여기가 어딘가 싶어 실눈을 뜨고 살피다가 우주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안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계속 기절하는 척을 했다. 안나는 속으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깜짝이야. 저 사람이 날 쳐다보고 있을 줄이야. 망신. 망신. 이런 빙충이 강안나!’
우주는 안나가 정신이 들었는데도 계속 기절한 척하자 어이가 없었다.
‘뭐야 지금 내 앞에서 계속 연기하는 거였어? 만날 때마다 날 속이려 드는군. 처음엔 한국말로 욕을 하더니 이제는 기절한 척 계속 하시겠다?’
우주는 당장 일어나 안나를 잡아끌어 일으키고 싶었지만 다리 수술로 인해 가까이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주는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차갑게 말했다.
“언제까지 기절한 척할 건데? 그만 눈 뜨시지?”
우주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나는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 앉아 우주를 향해 말했다.
“당신!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이거 납치인 거 알아요?”
“뭐? 납치?”
우주는 코웃음을 치고 안나를 노려봤다. 안나도 우주의 눈빛에 지지 않고 그를 쳐다봤다. 우주는 참을성을 발휘하는 듯한 표정으로 안나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안나는 그런 우주를 보고 하나도 겁 안 난다는 표정으로 우주의 침대 앞에 섰다. 그러자 우주는 안나의 팔을 확 잡아채서 자신의 얼굴로 안나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안나는 갑작스러운 우주의 행동에 숨이 턱 막혀오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닿으면 그와 자기는 키스도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안나의 이상한 떨림을 모른 채로 우주는 안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지금 누가 할 소릴? 너 지금 내 상태 안 보여? 그때 경기장에서 봤잖아.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 안 보이냐고!”
안나는 우주의 부상이 자기 때문이란 말에 우주에게 잡힌 팔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외쳤다.
“당신이 다친 게 왜 내 탓이에요?”
“네가 내 유니폼만 제대로 줬어도 난 이렇게 안 됐다고!”
우주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안나에게 외쳤다. 안나는 우주의 팔에서 벗어나려 했고 우주는 안나의 팔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이거 놔요! 그렇다고 이렇게 사람을 납치해오는 게 말이 돼요! 당장 이거 놔!”
안나는 몸을 뒤로 빼고 뒷걸음치려고 했고 우주는 안나의 팔을 잡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윽고 둘은 서로를 밀고 당기며 실랑이를 벌였다. 안나가 돌아서서 우주의 팔을 뿌리치고 앞으로 나가려는 찰나 우주는 안나를 뒤에서 확 끌어안고 옴짝달싹할 수 없게 했다. 우주는 그 순간 이상하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주는 자신이 이겼단 생각에 웃음을 참으며 외쳤다.
“못 가! 갈 테면 어디 한 번 가봐!”
미리보기글
“당신 다친 게 내 책임도 있다고 인정해요. 그렇지만 당신도 확인 안 한 건 사실이잖아요?”
“그래서 지금 우리 둘 다 반반 책임이라는 거야?”
“물론 내가 1차적으로 잘못한 건 인정해요.”
“내 유니폼 잘못 준 건 분명 그쪽 실수야. 그게 내 징크스를 무너뜨렸고.”
안나는 우주의 마지막 말에 빼도 박도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사실이니까.
“책임질게요. 내가 어떻게 책임질까요?”
“뭐? 책임? 그쪽이 책임이라는 게 뭔지나 알고 그런 소릴 지껄이는 거야?”
안나는 우주의 냉소적인 말에 약간은 상처 입었고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비꼬는 투로 물었다.
“그럼 어떡할까요? 내가 당신 대신 그라운드라도 뛸까요?”
“그쪽 같은 선수는 아무도 안 써. 완벽히 미치지 않고서야.”
우주는 그 말을 한 후 갑자기 땀을 뚝뚝 흘렸다. 안나는 우주의 안색이 나빠지자 뭔가 이상하다 싶어 조심스레 물었다.
“왜 그래요?”
우주는 안나를 향해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안나는 우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안나가 다가간 순간 우주는 안나에게 풀썩 쓰러지듯 안겼다.
“미쳤어요!”
안나는 우주의 상체를 뿌리쳤다. 그런데 우주의 상체가 풀썩 꺾이더니 휠체어 아래로 축 늘어졌다. 안나는 순간 뭐가 잘못됐단 생각에 우주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이봐요!”
우주가 기절한 것처럼 몸이 축 늘어지자 안나는 그의 뺨을 세게 쳤다. 안나가 우주의 얼굴을 잡고 따귀를 한 대씩 때리자 우주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그는 눈을 뜨자 마자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날 죽일 셈이야! 기운 없어 죽을 지경이야. 이렇게 보여도 어제 수술 받은 중환자라고!”
“정신이 들어요? 잘못된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계속 앵무새처럼 떠들어대지 말고 침대로나 옮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