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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결 1권

    2015.03.09 약 16만자 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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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흰 머리카락이 섞인 짙은 갈색 머리에 갈색 눈을 한 남자는 중년의 품위 있는 사람이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예의 바른 말투가 저절로 사람을 안정되게 만들었다. 소인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감사 인사를 했다. 남자의 정확한 영국식 발음으로 미루어 영국인이거나 영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 같았다.
“저는 앤드류 스펜서라고 합니다. 앤드류라고 부르세요.”
“아, 네. 저는 김소인, 소인은 이름이고 김은 성이에요.”
“발음을 정확히 하기 어렵군요.”
“친구들이 장난으로 난쟁이라고도 해요. 소인이라는 발음이 작은 사람이란 뜻으로도 쓰이거든요.”
“허, 그럼 공주님으로 해야겠군요.”
“네? 왜요?”
“일곱 난쟁이와 백설 공주가 생각나거든요.”
“우와, 그게 그렇게도 갈 수가 있는 건가요?”
“작은 공주님이면 딱 좋군요.”
“뭐, 여기서라면 그런 별명을 허용해도 될 것 같네요. 여기서라면요.”

[미리보기]

소인은 따뜻한 차림으로 지도 한 장을 들고 숙소에서 나와 걸었다. 속이 출출해서 먹을 것을 찾으러 이리저리 둘러보기도 하고 예쁜 건물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기도 하면서 계속해서 걸었다.
“와!”
어느덧 그녀의 발걸음은 관광객들이 꼭 보고 가야 할 것들이 즐비한 프린세스 스트리트로 자연스럽게 옮겨져 있었다. 도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아름다운 박물관이었다. 기대 이상의 흡족한 모습에 즐거워졌다. 비록 쌀쌀한 바람에 드러난 손이 시렸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는 장소에서 자유롭게 거리를 걸으며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다. 여행객들이 바글거리는 이곳에서 그녀는 더 이상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유명한 장소에는 동양인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짧은 여행의 기간 동안 많은 자랑거리를 가지길 원하는 사람들은 포인트만 찍어 방문하기 때문에 런던이나 이곳이나 비슷한 북적거림이 있었다.
“호!”
소인의 눈이 킬트를 입은 멋진 남자에게 향했다.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어 버린 킬트는 남자는 스커트를 입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히 멋있었다. 건강한 상체에 튼튼한 다리가 드러나는 킬트는 남자의 매력을 바지보다 오히려 더 돋보이게 해주는 것 같았다. 솔직히 소인은 전통적인 킬트 아래에는 속옷을 입지 않는다는 생각에 감탄사를 내뱉은 것이다. 요즘은 속옷을 입는다고는 하지만 왠지 상상하게 되는 바람에 혼자 즐거워졌다.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무리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앗!”
백파이프 연주가 시끄럽게 느껴질 때쯤 몸을 돌렸다. 이제 어둑해져 가는 하늘을 느꼈고 동시에 배가 고프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갑자기 돌린 것인지 뒤에 서 있던 누군가와 심하게 부딪혀 버렸다. 남자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부딪힌 곳이 가슴 부근이었으니 키가 큰 사람이었고 딱딱한 느낌이었으니 등이 아닌 이상 남자일 것이 분명했다. 한 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한 상황에서 부딪혔기 때문에 그녀는 보통 때처럼 미안한 생각이 먼저 들지 않았다.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너무 바짝 다가서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탁,
“엄마야!”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해야 할지. 부딪혀서 기우뚱하려는 몸을 제대로 가누려고 본능적으로 남자의 팔을 잡았다. 그런데 중심을 겨우 잡고 눈을 들어 남자를 올려다볼 사이도 없이 그가 매섭게 그녀의 손을 쳐냈다. 소인은 반쯤은 억울한 마음에, 나머지 반은 아픈 고통에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올려다보았다.
‘엇, 슈트, 슈트가 아닌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매정할 정도로 차가운 매너를 가진 그 남자는 바로 몇 번이나 만났던 선글라스와 멋진 슈트를 입었던 그 남자였다. 멜로즈 에비에서도 봤고 안내소에서도 만났던 그 남자는 넓은 어깨와 단단한 가슴 선이 드러나는 섹시한 니트를 입고 있었다. 슈트가 아니었기에 처음엔 금방 몇 번의 만남과 연결 지을 수 없었다. 여전히 끼고 있는 선글라스가 있었지만 너무 가까웠고 더군다나 그렇게 눈에 띄는 슈트를 벗고 다른 옷을 입고 있었기에 연결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연결시킨 후가 더 문제였다. 몰려드는 불쾌감과 불편한 감정들이 부글거리며 올라왔기 때문이다.
“…….”
소인은 그 남자를 마주 올려다보기 어려웠지만 꾹 참고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녀는 분명 잘못한 일이 없었다. 그가 그녀의 손을 매섭게 쳐 낼 만큼 잘못한 일이 없었다. 그의 과할 정도로 심한 반응이 그녀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만들었다.
획,
하지만 소인이 기다리던 사과의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선글라스 너머로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몸을 획 돌려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는 그녀가 아는 불쾌한 표정을 모두 지으며 그렇게 몸을 돌려 사라졌다.
“아, 정말, 뭐가 이렇게 꼬여?”
기분이 나빴다. 남자가 쳐낸 손이 똑같은 통증을 내며 아팠다.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미움 받고 있는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몰래 뒤통수라도 때린 것처럼 왜 그래? 난, 살면서 남한테 피해 준 일이 없단 말이야. 어릴 때도 누구하고 싸운 적도 없는데.”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자 더 크게 울컥했다. 그 남자 때문에 미뤄 둔 기억이 떠오른 것이 분하고 억울했다
“누가 뒤에 서 있으래? 그렇게 기분 나쁜 사람 뒤에 왜 바짝 서 있었느냔 말이야? 내가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앞에 달린 사람이 피하는 게 기본 아니야?”
진정하려고 혼자 열심히 중얼거려 봤지만 점점 더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커져만 갔다. 남자가 사라진 곳 뒤쪽으로 익숙한 피자집 간판을 보지 못했다면 더 오랫동안 씩씩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피자집을 알아본 순간 배고픔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소인은 여전히 분했지만 어렵지 않게 먹을 곳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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