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옛날 옛날 어느 한 옛날, 가탈 많은 삶을 살았던 여인이 계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리따우며 곱디 고우신 아가씨는 아니셨습니다. 말쑥하게 키가 컸고, 콕 박힌 주근깨는 당차고, 명랑했죠. 또 총명했고요. 아무리 해를 쬐어도 하이얀 살결은 그이가 숨겨놓고 있는 자신감이랄까요, 자존감이라 할까요. 하여튼 자랑이었습니다. 신성을 두르고 태어난 후작 여식이라는 증명이 되어줬으니까요.
그런데 정이란 무서운 것이죠. 사람은 때때로, 생각과는 다른 말, 다른 행동을 저지르고 맙니다. 사랑하니까요. 사랑하는 게 너무나 많아서 저 무서운 정을 이길 수가 없네요. 그이께서도 그러셨습니다. 바른 것은 바르게, 옳은 것은 옳게 하셔야 했고 틀린 것을 보면 고치지는 못하더라도 말 한 마디 정돈 하셨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더 정에 약했는지도 몰라요. 그건 귀한 천성이셨는지 그런 사람들한테 둘러싸여서 살아온 정의셨는지도 모르겠지만, 진실되고 참한 것은 변치 않지요.
네, 참하신 분이셨습니다. 용용하시며 강인하시고, 앙가슴에 파고드는 그 신산한 세월을 우리네야 편히 논한다지만 어찌 측량켔습니까. 헌데 그 측량 못할 것에서도 아는 한에서는 심도를 나눌 수 있겠지요. 그 이야기를 해봅시다. 그 이야기를 하려거든, 하려거든 기십여 년을 올라가봐야 할는지요. 패장은 말이 없다지만 아마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겝니다. 거스르지 못할 역사에 거슬리셨으니까요. 언제부턴가 하면 황력으로 구백하고 팔십년, 평애 황제께오서 양위하시고 태상황으로 북궁 유폐를 당하셨던 해겠습니다. 홍력 원년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