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덥지도 춥지도 않은
그래서 ‘딱 좋은’ 그런 날.
1년 중 얼마 되지 않는 ‘초하의 계절’이 있다.
그녀는 그 계절이 자신의 이름과 같아 좋았다.
이른 여름을 뜻하는 초하.
초하의 계절에는 봄꽃은 지고 녹음만이 완연했다.
온통 세상이 푸르름만으로 가득했으니까.
또한 봄과 여름 사이에 비집고 들어 있는 귀한 시간 같아 좋았다.
작고 소중한 느낌이.
그녀가 나고 자라 스물일곱 살인 지금까지 사는 오지 산골 마을 우호리의 초하는 그 어느 때보다 싱그러움이 그득 차올랐다.
우호리 산을 오르내릴 때에는 오솔길로 이어지는 길 중간에 있는 오두막집을 항상 지나쳐야 했는데,
몇 년 전 외지 사람이 짓기만 하고 발길이 뚝 끊긴 오두막집이라
잡초가 무성해 지붕만 간신히 보였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틀간 비로 나물을 캐러 오지 않았더니 어느새 오두막집이 말끔한 모습으로 떡하니 있지 않은가.
“누구세요?”
“히익-!”
정수리 위로 남자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초하는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지석은 넘어진 초하를 날 선 눈으로 내려 봤다.
“저, 저…… 나물 캐러 왔다가요…….”
“나물 캔다는 분이 남의 집은 왜 기웃거리시죠?”
몇 년 만에 보는 외지 사람에게 미운털이 박히긴 싫은데,
눈이 돌아가게 잘생기기까지 한 남자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
“바다는 바다만의 향기가 있네요. 산에서는 맡을 수 없는 향기가 나요.”
“초하 씨도 그래요.”
“저요?”
“초하 씨는 특별한 사람이에요. 요즘 시대에 만나기 어려운…… 맑고 푸른 녹음 같은 사람이에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남자 지석이 산골 마을 우호리에 굴러들어 왔다.
오지 마을 우호리가 전부인 이초하, 그녀의 가슴속으로.
공통점이라고는 하나 없는 두 사람,
과연 살아온 거리를 극복하고 서로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본문 내용 중에서]
“안 되겠어요. 밤에 또 나갈지도 모르니 방에 들어가서 자요. 내가 소파에서 잘게요.”
다 마신 잔을 테이블에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그가 단호히 말했다.
절대 거절할 수 없게.
“그럼 같이 자요, 방에서!”
그녀가 용기 내 말했다.
“농담합니까?”
“손 안 대실 거잖아요. 아까 약속했잖아요. 그런데 뭐가 문제예요.”
그는 자기가 한 말 그대로 그녀가 따라 말하자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먼저 들어가 누워요. 바로 불 끄고 들어갈 테니까.”
같이 자자고 먼저 도발해 놓고 막상 그가 방에 들어가 있으라니까 초하는 괜한 짓을 한 건가 조금 후회가 됐다.
쭈뼛거리는 걸음으로 그녀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선 순간 오늘 잠은 다 잤구나 했다.
침대는 하나뿐이었다. 그나마 좁은 1인용 침대가 아닌 2인용 침대인 것에 감사해야 하나.
신발을 신고 다니는 바닥이라서 바닥에서 자겠다고 고집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작은 체구에 감사…….
끼익- 문이 열렸다.
초하는 침대에 얼른 누워 등을 돌리고 이불을 끌어 얼굴을 반쯤 덮었다.
탁.
문이 닫혔고,
딸깍.
불이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