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이혼해요.”
서하가 제 목구멍을 꽉 틀어막고 있던 단어를 간신히 입 밖으로 밀어냈다.
“풉.”
저런 걸 비웃음이라고 하는 건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할 만큼 위압감이 느껴지는 남편을 향해 세상에 태어나 가장 큰 용기를 냈지만, 돌아오는 건 비틀어진 입매에서 나오는 조소뿐이었다.
그 흔한 카페나 영화관 데이트도 못 하고 치러진 정략결혼일지라도 한번은 사랑이란 걸 받아 보고 싶었는데…….
이건이 대꾸도 없이 변호사를 통해 바로 이혼을 진행했다.
“당신에게 결혼은 비즈니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군요.”
“지금 당신 아버지가 하는 꼴을 알고도 그런 말이 나올까?”
길고 깊고, 또 아름답기까지 한 남편의 눈이 자신에게 채 1초도 머물지 않고 차갑게 식어 버리자 서하가 헛된 망상을 버렸다.
* * *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듯 이건의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렸다.
기억 속 새까만 소녀는 늘 찬란히 빛나는 존재였지만 김서하는 누구보다 어두운 사람일 뿐이니까.
하지만 가당치도 않았던 그의 생각이 차츰 무너졌다.
이혼 조정 기간 중 아내와 단둘이 외딴 섬에 갇히고 나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