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내가 언제 그쪽 전대를 가져갔다는 거요! 증거 있소? 내가 훔쳤다는 증거가 있냐고! 아니, 양반이면 단가? 양반이면 사람을 도둑으로 몰아도 되는 겁니까?”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어리바리한 사내 뒤에 선 미모의 양반이 피식 웃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도둑놈 주제에 큰소리는 잘도 치는구나. 네 소매치기 솜씨보다는 그 뻔뻔스러운 모양새가 더 마음에 드는구나.”
동주가 어리둥절해하던 그때, 양반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혹시 큰돈을 벌어 볼 생각은 없느냐? 이런 좀도둑질로 얼마를 벌 수 있겠느냐. 평생 남의 돈이나 훔치며 살 게 아니라면 아예 크게 한탕하고 평생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그럴싸한 말에 동주의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그녀도 도둑질이 좋아서 하는 건 아니었다.
부모 없이 태어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네 명의 어린아이를 동생으로 거두어 키우려니 여자의 몸으로 그들을 먹여 살릴 방법이 많지 않아서였다.
땅을 빌려 소작해 봤자 소작료를 내면 남는 게 없어 굶어 죽지 않는 게 다행인 판이었다.
다른 일도 알아보았지만, 여자이기에 겪어야 하는 신변의 위험이 상상 이상이라 정상적으로 일을 해 돈을 버는 일도 수월하지 않았다.
수중에 돈만 좀 넉넉히 생기면 동생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실컷 먹여 줄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