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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권

    2017.07.13 약 13.3만자 2,500원

  • 2권

    2017.07.13 약 11.2만자 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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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꿀잠을 자고 일어나 눈떠 보니 어라, 여기가 어디야? “오드리! 어때?” “오드리? 오드리 헵번?” “아니, 오드리 헵번에서 딴 게 아니라 모두를 오들오들 떨게 할 만큼 잔인한 악녀라는 거지! 하하하하!” 설마 나, 친구의 소설 속에 들어온 건가? 24년 평생 쫄보로 살아왔는데 악녀라니... 내가 악녀라니! 쫄보답게 집에서만 지내던 그녀. 예상치 못한 만남으로 인해 세상 밖으로 떠밀리는데. 욕쟁이 드래곤에, 또라이 마법사에.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 집에 가고 싶어! 제일 안전한 이불 속으로 가고 싶어! *** 본문 발췌 밤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울던 시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짧아졌다. 이곳에 적응해야 하나, 서서히 생각은 그쪽으로 치달았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는데, 돌아갈 방법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깜깜했다. 고깔 모양의 검은 탑을 바라보며 조그맣게 ‘엄마’를 불렀다. 얼마나 걱정하고 있을까. 엄마를 생각하니 또 목이 메어 왔다. 발끝에 걸리는 이불을 끌어 올려 껴안았다. 밤마다 훌쩍이며 이불에 대고 엄마, 아빠를 그리워하다 잠들었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이불은 이제,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다. “아가씨!” 끼얏! “아, 아가씨. 내, 내려와 보셔야겠어요. 소, 손님 오셨어요.” 주근깨가 도드라지도록 새하얀 얼굴로 노크도 없이 안리가 들어섰다. 창틀에 기대어 넋 놓고 있던 난 트램펄린을 탄 것처럼 튀어 오르며 돌아앉았다. 이 집에 온 손님을 왜 내가 가서 봐야 하는 거야? 내 손님일까? 입을 연 채 대답도 못 하고 안리를 바라봤다. 빨리 나오라면 안리가 손짓을 한다. 아악! 무서워! 나도 모르게 떨리는 손으로 침대를 디디며 일어섰다. 이 집엔 나밖에 안 사는 거야? 왜 내가 손님을 맞이해? 크게 떠들지 못하는 투정을 중얼거리며 느릿느릿 방을 나섰다. 늑장 부리는 날 보며 안리가 답답하다는 듯 눈치를 줬다. 알아, 나도! 내가 느리게 걷는 걸. 이건 연기가 아니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무섭다고! 오늘에야말로 들키는 걸까. 두려움에 어질어질한 시야를 붙잡고 1층으로 내려갔다. 내딛는 계단에서 불길함이 먼저 올라왔다. 계단 끝에 하얀 망토를 쓴 여자와 그 뒤로 기사로 보이는 네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내가 올라가면 되는데, 괜히 내려오라고 했네.” 하얀 망토의 여자가 간지럽게 얇은 목소리로 날 향했다. 망토가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어 여자의 입술만 보였지만, 엄청 미인이라는 감이 왔다. 이곳에서도 성형이 빈번한 걸까. 양악 수술이라도 한 듯 깎아지른 날렵한 턱 선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잡생각에 빠져 있을 때 여자가 내게 팔짱을 꼈다. 계단을 다 내려서기도 전에 여자는 나를 붙잡고 통통 튀듯 다시 올라갔다. “네 방이 어디야?” 당당한 여자의 태도에 초록색 방문을 손가락으로 슬그머니 가리켰다. 여자는 그려 놓은 듯한 앵두 입술을 올려 미소 짓고, 나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선 여자는 천천히 훑어보더니 작게 미간을 찡그렸다. 내 방 인테리어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십 대 소녀치곤 칙칙한 가구는 내 취향도 아니라고 변명할 수도 없었다. 바짝 긴장한 난 여자의 눈치만 살폈다. 코웃음을 치고 여자는 우아한 손짓으로 망토의 모자를 벗었다. 순간 금싸라기를 본 양 눈이 부셔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번쩍번쩍 빛나는 금발 머리였다. 여자의 머리를 조그맣게 묶은 것 또한 금줄로 되어 있었다. 망토를 여민 단추를 풀자 여자의 목을 감싸고 있는 주먹만 한 빨간 보석이 반짝거렸다. 금박으로 장식된 팔목을 감싸는 장갑을 벗더니 여자는 나를 내려 보듯 보았다. 자연스럽게 드레스 자락을 쥐며 여자에게 인사를 하려 고개를 숙였다. 인사를 받아 마땅한 외모와 오로라가 풍겼다. 나보다 높은 신분이라는 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 몸의 얼굴도 꽤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금발 머리 여자 앞에서는 그저 변두리에서나 먹어 주는 외모였다. 짝― ! 차진 마찰음과 타의로 돌려지는 내 목에서 두둑 소리가 났다. 곱다고 생각한 여자의 손이 내 뺨을 후려갈겼다.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곧바로 몸이 꼿꼿이 세워졌다. 예쁜 여자가 힘도 세다. 눈앞에 번개가 내리치며 곧 불에 덴 듯한 아픔이 찾아왔다. 모르는 여자에게 맞았다는 억울함도 잠시 망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의 평온함은 이제, 끝났구나. “오드리! 한 달이나 나를 찾지 않다니!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원망 어린 여자의 목소리에 볼을 감싸고 고개를 돌렸다. 뾰족하게 내려 보는 자수정의 눈동자에 물기가 아롱거렸다. 흐흑, 울음을 토하며 여자가 덥석 날 껴안았다. 날 때린 여자가 어깨를 흔들며 울고 있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당황스러운 상황보다 까르르 웃는 유일했던 친구, 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드리! 어때? ― 오드리? 오드리 헵번? ― 아니, 오드리 헵번에서 딴 게 아니라 모두를 오들오들 떨게 할 만큼 잔인한 악녀라는 거지! 하하하하! 친구의 네이밍 센스를 비웃어 가며 같이 웃어 젖히던 순간이 기억났다! 설마 나, 친구의 소설 속으로 들어온 건가? 한창 악녀물이 유행하더니, 나 악녀로 이곳에 온 거야? 스물네 살 평생 쫄보라는 별명밖에 없었던 내가 악녀라니! 펄떡펄떡 뛰는 볼을 감싼 채 멍청하게 서 있었다. 손바닥이 금방 뜨끈해져 왔다. 그러고 보니 맞고서야 내 이름을 알았다. 이 집 사람들은 왜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 주지 않는 거야! 억울하다. 뒤늦게 통증이 거세져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어머, 어머. 많이 아팠어? 그런데 오드리, 네 잘못이야. 날 외롭게 만든.” 금발 여자는 내게서 떨어지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러더니 내 눈물도 닦는다. 이 언니, 뭔가 무섭다. 아! 이 여자가 유리인가? 안 찾아가서 혼나는 건가? 날 때린 여자가 지레 유리라 짐작한 난, 버벅거리는 뇌로 어떤 변명을 할까 열심히 굴렸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나자 여자와 나는 동시에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쉴 틈을 준 노크 소리가 처음으로 반가웠다. 안리가 차를 들고 조심스레 들어왔다. “이 차가, 공주님 입맛에 맞을지 걱정…….” “놓고 나가.” 싸늘한 여자의 답에 안리가 얼른 차를 내려놓고 나갔다. 여자는 찻잔이 놓인 테이블에 먼저 자리했다. 그리고 내 손을 끌어당기며 어서 앉으라는 눈짓을 했다. 바짝 얼어 있던 난 여자의 힘에 의자 위로 풀썩 앉았다. 안리가 했던 말이 날 얼어붙게 했다. 고오오옹주? 날 때리며 울던 여자가 공주란다! 안리, 손님이 공주란 얘기는 해 줬어야지! 이 몸은 공주와 친했었어? 평화로움은 깨지기 시작하니 끝도 없이 부서졌다. 악녀가 무슨 일로 공주와 인맥을 쌓았던 걸까? 음산한 방 분위기와 달리 금수저들의 뒷배가 있었던 몸인 걸까. 뇌 주름이 흐물흐물 풀리며 다시 엉켜 드는 것 같았다. 테이블에 놓인 차는 손도 안 댄 공주는 내 한 손을 꼭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상큼하게 웃는 공주가 왜 섬뜩하게 느껴지는지, 파르르 떨리는 손을 들키지 않으려 힘을 주었다. “오드리, 내가 얼마나 오드리를 좋아하는지 알고 있지?” 히이익! 서, 설마, 그쪽이야? 우리가 사, 사…… 그런 사이인가요? 입술만 벙긋벙긋한 채 말을 못 잇는 날 보고 공주는 헤헤 웃었다. 섬뜩한 기운이 찾아들어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오드리가 잘 모르고 있을까 봐 확실히 말해 줄게.” 잘 모르고 싶어요! 알고 싶지 않아! “내가 얼마나 오드리를 의지하고 있는지. 이전 일도 오드리만큼 잘 처리해 준 사람은 없었어. 우리 오드리는 정말 대단하다니까!” 이어지는 공주의 말에 난 움츠렸던 어깨를 내렸다. 처리하다니? 내가 무얼? 이상야릇한 사이가 아닌 건 다행이지만 공주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공주를 바라보던 눈가에 힘을 주다 슬쩍 내리깔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걸 티 내지 않으려 애썼다. “거의 다 왔어.” 비밀인 듯 공주가 낮게 속삭였다. “조금만 더 애써 줘, 오드리. 그 백작가 딸이 마지막이야.” 백작가 딸? 놀란 마음에 공주를 바라보자 공주가 내 팔을 툭 쳤다. 어머, 어머. 모른 척하기야? 앙큼하기는. 말은 안 했지만 공주의 표정이 그랬다. 마지막이라고 하는 건 내가 처리할 것이 남아 있다는 말인가? “크리스탈룸가의 피오나. 그 애만 조용히 시켜 주면 유리에게 백작을 내려 줄게. 맞지? 오드리가 원하던 것이?” 유리……. 또 이 이름이 나왔다. 그럼 공주는 유리가 아니라는 건데. 유리, 넌 누구냐! 난 부러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하는 척하며. “미리암을 처리했던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처참하게 해 주면 난 너무 기쁠 것 같아. 그럼 정말 편히 잠잘 수 있을 거야. 오드리! 해 줄 거지?” 공주가 눈을 반짝이며 천연하게 날 응시했다. 처, 처참하게라니! 미리암은 또 누구야! 내가 무슨 짓을 했다는 거야? “그래그래. 쉬운 일이 아니지. 오드리에게 내가 심한 짓을 시키는 걸까?” 걸. 까? 힘주어 말하는 공주가 눈동자를 돌리며 입술을 튕겼다. 뭔가 마음에 안 찬다는 표정이다. ‘명령 받들겠습니다, 공주님!’이란 대답이 안 나와서인 걸까? 무슨 처참한 짓인지도 모르는데 선뜻 대답을 내릴 수 없는 나도 속이 타들어 갔다. “그래도오, 자작을 백작으로 만들어 주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라구우!” 말꼬리를 늘이며 공주가 몸을 꼬며 말했다. 애교를 피우는 건가, 의아할 새도 없이 공주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 성에 살게 된 것도, 이 많은 사용인을 쓸 수 있는 것도 다 누. 구. 덕?” 또박또박 끊어지는 공주의 말에 두 눈을 끔뻑이자 공주는 또다시 장난스럽게 내 팔을 쳤다. 이 성처럼 커다란 집과 수많은 시녀들이 전부 공주가 해 준 건가! “다시 시골에 낡고 허름한 집으로 보낼 수 있는 사람도 나, 라는 걸, 오드리는 똑똑하니까 모르지 않겠지? 호호호!” 경쾌한 웃음소리가 방 안을 휘저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나와 달리 공주는 입도 안 가리고 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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