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새근새근.
조용한 실내 공기를 타고 여자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자석에 이끌리듯 아늑한 조명에 묻혀 잠들어 있는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샤워를 한 듯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여자의 머리카락과 뽀송해 보이는 얼굴을 보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편안하게 잠든 모습을 보니 기쁨이 솟아났다.
그는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다 종이 백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소리를 한 번 더 쳐다보았다. 이제 정말 여자와 헤어져야 할 때이다. 더 이상 질질 끌면 안 되었다.
하나 그는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 충동에 져 보기로 했다.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서 촉촉하게 젖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머리카락은 부드럽고 촉촉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손가락에 짜릿하고 전율이 일었다. 계속 만지고 싶었다.
‘난 널 무척 잘 알아. 넌 말로만 간다고 하면서 계속 그녀 주위를 맴돌고 있어. 뭐 어때? 몇 분만 더 있는다고 상황이 달라질 건 없어. 거기다 여자는 잠들어 있어. 넌 널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 줄 필요가 있어. 이제껏 맘 편히 쉰 적도 없잖아. 네 스스로가 옭아맨 규율에 맞춰 살아가는 인생이 고달프지 않니. 이번 딱 한번은 상이야. 이 여자 머리카락 만져. 마음껏 만지라고.’
또다시 그를 부추기는 사악한 속삭임에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손끝이 근질근질 찌릿찌릿 아려 왔다.
“으음…….”
소리가 잠에 취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척였다. 놀라서 경직되어 있던 그는 다시 잠에 빠져든 그녀를 보며 허탈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는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미친 거다. 내가 미친 게 분명하다.
“저기요.”
자책하면서 발길을 돌리려던 그가 우뚝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