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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결 1권

    2015.03.16 약 15.8만자 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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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늘 보고 있었어. 무심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네가 뭘 하는지 뭘 먹는지 누구랑 대화를 하는지 어떤 과목을 좋아하는지 머리를 어떻게 묶는지, 종이는 어떻게 버려서 쓰레기통에 버리는지 하는 것 등의 사소한 것들까지. 늘 지켜보다보니 그 방법까지 저절로 외울 정도로 말이야. 대체 그걸 내가 어떻게 알고 왜 알고 있는 걸까, 처음엔 기가 막혔는데 그 이후엔 어렵지 않게 결론에 도달했어. 하나밖에 더 있어? 한 번은 말하고 넘어갈 문제라고 생각했어. 난 늘 여전히 너한테 시선이 가고, 이걸 사랑 말고는 다르게 말 못 하겠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점차 비연에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예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 당시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멍청하게도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엄마가 말했던 행복하라는 그 말이 어제 소파에 놓여 있는 네 가운 보면서 문득 떠올랐어. 동시에 네가 생각나더라.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너밖에 안 떠올랐어. 행복하라는 그 말에. 근데 안타까운 건 이게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야. 너하곤 달리. 익숙하고 편안하게 곁에 있어줄, 그저 내 행복 위해서 네가 내밀었던 손 덥석 붙잡은 건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사실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차피 변할 거라면 은신우, 너를 한 번쯤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이기적인 마음으로 제 옆에 붙잡고 있기엔 그는 아까운 남자였다. 솔직하고 진중하며 충실할 줄 아는.
“그런데도 내가 네 옆에 있을 자격이 돼? 사실대로 말하면 너랑 하는 키스, 나쁘지 않았어. 하지만 그뿐이야. 설렘이나 떨림, 감흥은 전혀 없어. 그러니까 나는, 경고하는 거야. 은신우.”
아주 친절하게. 도망가려면 지금 도망가라고.
“난 14년 알고 지낸 너한테 아직도 설레. 그러니 네가 나한테 설레지 못할 거라고 장담하지 마.”

‘오랜 친구’에서 ‘오랜 우리’가 되기까지.



<본문 중에서>


“사실대로 말하면 너랑 하는 키스, 나쁘지 않았어. 하지만 그뿐이야. 설렘이나 떨림, 감흥은 전혀 없어. 그러니까 나는, 경고하는 거야. 은신우.”
아주 친절하게. 도망가려면 지금 도망가라고. 하지만 신우는 도망은커녕 서서히 비연의 앞으로 다가왔다. 평소와는 다른 날선 기세에 비연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바스락거리며 메모지가 등에 눌리는 소리가 고요한 공간에 가득 울려왔다.
“난 14년 알고 지낸 너한테 아직도 설레. 그러니 네가 나한테 설레지 못할 거라고 장담하지 마.”
올곧게 마주쳐오는 짙은 눈동자에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하지만 비연은 신우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알았으니까 비켜. 등에 메모지 배겨서 아파.”
“……분위기 없는 것.”
나지막하게 읊조린 신우는 불만스레 한숨을 쉬었지만 비연이 벽에서 떨어질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났다.
할 말이 없어진 두 사람은 이내 운동장을 지나쳐 신우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비연의 구두를 유심히 살펴보던 신우가 퉁명하게 말을 건넸다.
“발은 왜 그래?”
“발이 왜?”
“모질이. 자기 발 아픈 것도 모르지?”
“뭐가 어째?”
차 앞에 다다르자, 예고도 없이 비연의 허리를 덥석 안은 신우가 차의 보닛에 비연을 앉혔다.
“야! 차 부수어져?”
“고작 네 무게에 부셔질 만큼 약하지 않아, 내 차.”
신우는 아랑곳 않고 슈트 바지 주머니를 뒤져 반창고 두어 개를 꺼냈다.
“너 혹시 나 때문에 반창고 갖고 다니는 거야?”
“그걸 이제야 알았어?”
비연은 쌀쌀맞은 말투와는 달리 자신의 구두를 살며시 벗기는 신우를 조용히 눈에 담았다. 조심스런 동작으로 발꿈치에 반창고를 붙이는 신중하고 차분한 모습은 한결 같았다. 상대를 배려하는 세심한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비연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너 혹시 다른 여자한테도 이래?”
반창고를 붙이던 신우가 시선만 올려 비연을 흘끗 바라보았다.
“왠지 그러면 질투는 날 것 같아서.”
작게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신우는 대답 대신 조용히 웃음을 터뜨렸다. 반창고를 다 붙인 뒤에도 비연에게 구두를 신기지 않은 신우는 비연 쪽으로 서서히 상체를 기울였다. 신우의 양 손이 보닛 위에 닿았고, 그 사이에 갇힌 비연은 천천히 눈을 깜박거렸다.
“네가 믿을 진 모르겠는데, 난 너 말고는 닿고 싶은 사람도, 안고 싶은 사람도 없어.”
“어떻게 그래?”
“나도 몰라.”
“…….”
“그걸 알면 이렇게 등신 같은 짓은 하고 있지도 않겠지.”




<미리보기>


신우는 퇴근 후 비연의 집에 들렀다. 건물 밖에서 불이 꺼져 있는 창을 미리 발견한 신우는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비밀번호를 누르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밤새 작업을 하고 몇 시간 전에야 잠이 든 모양이었다. 새근거리며 잠이 든 비연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신우는 작업대 위에 있는 그림을 들여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침대 위에 누워 키스를 하는 남녀의 그림이 며칠 전의 두 사람을 연상케 했다.
슈트재킷을 벗어 소파 위에 걸쳐놓은 신우는 집 안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서랍장 앞으로 다가갔다. 맨 위의 서랍을 열자 가지런히 개켜져 있는 속옷이 눈에 들어왔고, 신우의 눈 밑 뺨과 귀가 예전과는 달리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이제 비연의 속옷만 봐도 그녀의 벗은 몸이 저절로 떠올랐다.
얼마 전 자신이 직접 벗겼던 비연의 속옷이 눈에 들어오자, 신우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새삼.’
손을 뻗어 살며시 속옷을 들추던 신우는 맨 아래에 깔려 있는 콘돔 몇 개를 발견하곤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콘돔 하나를 집어 들었다.
“기껏 훔쳐가더니 버리진 않았네.”
이게 다가 아닐 텐데. 신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침대 위에서 뒤척거리는 비연을 발견하고는 생각을 바꿔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이불을 살며시 들춰 옆에 누웠는데도 꽤나 피곤했는지 비연은 잠에서 깨지 않았다. 비연의 등을 바라보던 신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녀의 이름을 작게 불렀다.
“비연아.”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를 웅얼거리며 신우를 향해 돌아누운 비연은 다시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냈다. 신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던 그의 눈에 비연이 입고 있는 트레이닝복 상의가 들어왔다. 본래 잠자리에선 간편한 복장을 선호하는 그녀지만 오늘은 유독 피곤했던 모양이었는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곧바로 잠이 든 것 같았다. 목 위까지 채워져 있는 트레이닝복의 지퍼를 살며시 내린 신우는 점차 드러나는 목덜미에 눈길을 주다가 조금 더 욕심을 냈다. 하지만 욕심이 지나쳤는지 서서히 가슴결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귓가에 서늘한 목소리가 꽂혔다.
“너 뭐해?”
꽤나 집중했던 탓에 움찔거리며 놀란 신우는 서서히 시선을 옮겼다. 비연이 뚱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짐승.”
“알아, 나도.”
이왕 들킨 거 하던 일이나 마저 하자는 생각으로 신우는 누워있는 비연을 덮쳤다. 꺅, 하고 지르는 소리가 입술을 묻는 신우로 인해 막혔다. 결국 트레이닝복의 지퍼가 끝까지 내려갔다. 비연은 가슴에 와 닿는 뜨거운 숨결에 서둘러 소리를 질렀다.
“우리 집엔 콘돔 없어!”
“걱정 마. 누가 우리 집에서 훔쳐간 게 여기 어딘가에 있을 테니까. 예를 들면 속옷 서랍장 속이라든가.”
“도둑!”
“누가 할 소릴.”
“짐승!”
“아까 말한 거잖아.”
쉬지 않고 맞받아치는 신우가 얄미운지 비연은 눈을 부릅떴다. 큭큭 장난스레 웃음을 흘리던 신우는 바지를 벗기는 대신 몸을 일으켜 비연의 옆자리에 느긋하게 등을 기댔다. 그는 비연의 눈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다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눈 밑이 새까마네.”
“졸려.”
“재워줄게. 자.”
비연은 감동했다는 얼굴로 그를 빤히 응시하다가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근데 너 왜 온 거야?”
비연의 등을 토닥이던 신우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보고 싶어서.”
순식간에 반응하는 심장으로 인해 비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이내 환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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