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모든 건 그 영상으로부터 시작됐다.
하계 종목인 수영 국가대표 백가온.
동계 종목인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 한겨울.
두 사람에게 서로의 훈련 과정을 찍으라는 제안이 들어 온다.
사람들이 제대로 모르는 피겨 스케이팅 종목이지만 늘 세계 1등을 꿈꾸며 노력하는 겨울과 다르게
백운 그룹 회장 아들이자 최연소 메달리스트 타이틀을 가진 가온은 열정이 없어 보인다.
“더 열심히 해서, 이번 겨울엔 올림픽 금메달도 딸 거예요.”
“그러다 그 말대로 금메달 못 따기라도 하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따뜻한 수영장과 몇 겹을 껴입어도 살을 에는 추위의 링크장.
그 시린 온도차만큼이나 운동을 대하는 태도도 다른 두 사람은 초반부터 계속 부딪친다.
하지만 부딪치는 만큼 어느덧 서로의 진심과 열정을 느끼게 되는데…….
“좋아해요. 피겨 너무 좋아.”
“나 응원해 줘, 계속. 2등이어도. 3등이어도. 아니, 제일 마지막이라도. 상관없어.”
얼음 위 피겨 선수와 물 아래 수영 선수의
“너만 나 응원해 주면 돼. 난 그거면 돼.”
하나뿐인 사랑과 응원의 이야기.
* * *
말을 하다 문득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리액션 되게 성의 없어. 추위에 코를 훌쩍이고 괜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선배를 살짝 흘겨도 봤다. 선배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가벼운 손길에 나는 또 어린아이처럼 한참 투정을 부린다.
왠지 모르게 이 사람 앞에선 자꾸만 철없이 행동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모두 들어주고, 웃어 주고, 고갤 끄덕여 주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지금까지 있었던가.
“겨울아.”
문득 손을 뻗어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를 귀에 걸어 주며, 선배가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갑자기 훅 다가선 그 낯선 온기에 또 몸을 움츠렸다. 움츠리면서도, 달아나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있어. 진짜로.”
“…….”
“나 되게 좋아하거든, 네 연기.”
잘하고 와. 선배가 말한다.
별것 아닌 그 응원을. 흔하디흔한 그 한 마디, 그 손길을.
나는 왜 이토록 커다랗게 느끼는 걸까.
▶잠깐 맛보기
나는 순식간에 차가워져 파리해진 것 같은 입술을 깨물고, 옆구리에 붙어 있던 양 주먹을 힘을 주어 쥐었다. 긴장으로 손이 바르르 떨렸다.
“이제 알겠어요. 제가 왜 이러는지. 왜 이렇게 선배님이 불편한 건지.”
허. 바람을 타고, 중얼거림 같은 헛웃음이 들렸다. 나는 가만히 두 손에 꾸욱 더 힘을 주었다.
“그거 아세요? 수영장은요, 너무 따뜻해요.”
“뭐?”
“저는요. 매일 두껍게 옷을 몇 겹씩 껴입고도 하루 종일 덜덜 떨면서 훈련해요. 링크장은 아무리 추워도 절대 난방이 안 되거든요. 훈련하다 발에 동상 걸리는 건 그냥 예삿일이고요.”
“…….”
“저희 종목은 연습 시간도, 빙상부 안에서도 늘 제일 뒷전으로 밀리고…….”
정말 안 그러고 싶었는데, 눈가가 점점 뜨거워진다. 나는 애써 입술을 맞다물며 가느다랗게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착잡한 미소였다. 그가 약간 멈칫하며 나를 바라봤다.
“……수영장은 따뜻하고, 넓고, 선배님이 원하면 언제든지 마음대로 쓸 수도 있잖아요. 부러웠어요. 저한테는 그런 것들이 전혀 당연한 게 아닌데, 선배님한텐 너무 당연해 보여서…….”
“…….”
“그러게요. 부러웠나 봐요. 그러니까, 그냥 다 제 열등감이네요. 괜히 선배님께 대신 투정 부리면서 화풀이해 버렸어요. 죄송합니다.”
“……한겨울.”
“그런데요. 누가 알아주건 말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시선이 엉켰다. 이제는 어딘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마주쳤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니까, 내가 좋아해서 하는 운동이니까.”
“…….”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무조건 나한테 당당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요, 선배님.
그래서 저는요.
“전, 무조건 세계 1등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