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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결 1권

    2015.03.19 약 20.9만자 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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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도망만 가지 말라고 했었지? 넌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계속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어. 내가 답답한 건 그거였어. 하루아침에 날 받아달라는 게 아닌데, 그저 마음 가는 것을 막지만 말아줬으면 하는데, 자꾸만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막아버리는 네가 답답했던 거야.”
물기가 묻어나는 시후의 목소리. 그리고 안타까운 눈동자.
“나랑 함께 있으면서 불행했니? 내가 널 더 상처주고 괴롭게 만들었어?”
고개를 저었다. 가슴이 먹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안 되겠니?”
시후가 잔을 내려놓고 내게 가까이 왔다. 그리고 조심스레 나를 끌어안고 내 머리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나는 나 못지않게 힘들어하는, 아니 오히려 나보다 더욱 힘들 그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졌다. 진심인데, 이 남자 정말로 진심으로 나를 대하는데…….
나는 손을 뻗어 시후의 목을 감았다. 그리고 머뭇대면서도 시후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 대었다. 조심조심, 마치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처음으로 물에 발끝을 담가보듯, 그렇게 망설이며 키스를 했다.
시후의 몸이 멈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곧 조심스럽게 키스를 되돌리는 그의 입술이 따스하게 나를 침식시켜 갔다. 다시 무언가가 마음 저편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쿵쿵 대는 두 심장이 하나처럼 느껴지는 따스함. 나는 눈을 감고 입을 열어, 조금 더 깊게, 그리고 열정을 담아 그의 혀를 감았다. 그리고 한 치의 모자람 없는 시후의 키스 역시 내 키스에 호응하여 깊어졌다.
믿어도 될까, 당신을? 이젠 기대도 되는 걸까? 더는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대답은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를 떠나보내기 싫어하는 내 마음은 인정할 수 있었다. 나는 시후의 입맞춤을 받으며, 더욱 깊이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도 나만큼 불안하고, 그도 나만큼 두려워하며 아파한다는 사실에 왠지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닮은꼴이었다. 그는 넘치는 사람이고, 나는 모자라는 사람인데, 그런데도 그와 있으면 제자리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뜨거운 무엇인가가 얼굴에 느껴졌다. 내가 우는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곧 그것이 시후의 눈물임을 깨닫고는 입술을 떼었다. 그리고 눈을 감은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늘게 흔들리는 속눈썹이 폭풍처럼 나를 뒤흔들었다.
어쩔 줄 모르고 그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천천히 시후의 눈이 떠졌다. 깊고 따스하고, 그리고 짙은 사랑으로 물든 눈이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격정으로 다시 그의 입술을 빼앗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도, 시후도, 세상도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누지 않았다. 그는 사랑을 주었고, 나는 그 사랑을 받기만 했다. 내겐 나눌 사랑이 없었다. 나눌 슬픔이라면 차고 넘쳤지만, 사랑을 나누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의 첫 결합은 내게 어설프고 낯설었다. 참을 수 없는 격정으로 나를 끌어안고 입술을 찍어가던 시후가, 막상 벌거벗은 나를 보곤 억지로 참았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겁내고 있었다. 나를 가지고 나면 내가 떠나버릴까 봐, 그걸 염려하고 있었다. 섹스를 단순한 기호로만 바라보고 있는 나를, 그는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내 손길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의 이성이 나서기엔, 우리 둘은 이미 감성과 본능의 세계로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겁내지 말아요.’
머뭇거리는 그에게 내가 말했다. 겁내지 말라고, 이별의 의식 따위가 아니니까 망설이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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