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윤서는 하얀 도화지 위에 빠르게 크로키를 그렸다.
이내 조금씩 그림의 형체가 드러났다.
그림 안에선 남녀가 서로를 갈구하듯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친밀한 사이만 할 수 있는 행위.
저런 행위를 두고 사랑이라 믿었던 적이 있다.
화상처럼 쓰라린 기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녀는 한 남자를 떠올리고 만다.
“내 그림을 외설로 취급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요.”
“예술적인 그림도 때론 육체적인 자극을 줄 수 있지.”
그가 그런 존재였다.
예술적이면서도 외설적인.
탐닉하고 싶지만 위험한.
툭, 상념을 깨치듯 연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 야릇한 열기에 휩싸인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게 해 줘요, 제발.”
그의 안에서 피어나는 달콤한 향기,
심장의 낙인을 잊게 해 줄 망각의 미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