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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권

    2017.10.04 약 17.6만자 3,500원

  • 2권

    2017.10.04 약 21.8만자 3,500원

  • 완결 3권

    2017.10.04 약 9.6만자 3,500원

이용 및 환불안내

작품소개

“모델 같은 거 해 본 적은?”
“관심 없고, 관심 없을 예정이니까 놔.”
“내 거야, 그거. 예정에 없던 관심 생기면 전화해. 기다릴 테니까.”
클럽에서 만나 막무가내로 명함을 안겨 주는 남자, 황태윤. 사기꾼 냄새 짙게 나던 그는 매니저도 아니요, 스카우터도 아닌, 포토그래퍼였다.
“저런 사람이 포토그래퍼라고? 야생 짐승같이 생겨 가지고.”
우연한 만남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 이시호. 그녀의 꿈은 오직 한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포토그래퍼 황태윤이 그려내는 그녀는 어떤 모습일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선다.
“이게 너야. 이런 널…….”


시호는 춤을 추느라 정신없는 애리에게 잠시 나갔다 온다고 말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 있으면 핸드폰으로 연락하라고 일러두고서. 밖으로 나왔는데도 시끄럽다. 하도 쿵쾅쿵쾅 울리는 바닥 위에 서 있었더니 땅이 빙글빙글 솟는 것 같다. 귀도 먹먹하고. 지금까지 별세계에 있다가 온 것 같다. 밖은 여전히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잠시 담배를 태우러 나온 사람들, 애프터를 나온 사람들, 웨이팅하는 사람들. 각자의 일을 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그들 무리를 지나쳐 시호는 인기척이 뜸한 곳으로 왔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고막을 자극하는 강렬한 음악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분명 저들의 고막도 자신과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을 텐데 아프지도 않은가.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일에 찌들어 하루하루를 바쁘게 사는 시호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큰 일탈이었다. 매일 늦은 시간까지 운동을 하느라 술은 아주 가끔 마시는 것이 다였고, 절약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워지니까 쇼핑도, 유흥도 제쳐 두고 살았다. 코치들 사이에서 어린 편이라 선배들이 사 준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신세를 지는 것 아닌가. 빚지는 기분이라 그도 싫다. 애리와 함께 클럽에 오면 아무 생각도 안 하게 될 줄 알았다. 모든 상념 다 제쳐 두고 저들처럼 음악과 한 몸이 되어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끼어 있을수록 자신의 처지가 확대되어 다가왔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난 뭘 하고 있는 거지. 현실 도피처로 찾은 곳이 고작 클럽이었던가, 하면서.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예전에 길거리 캐스팅 같은 거 받았을 때 오디션이라도 볼 걸 그랬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온다. 이제 와서 아쉬워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리고 지금이라도 하겠다고 하면 돈방석에 앉을 만큼의 대스타가 된다던가. 무엇보다 끼가 없잖은가. 지금까지 운동만 허구한 날 했는데 끼가 있을 턱이 없다. 카메라 앞에 서서 억지로 웃음 짓고, 연기하고. 생각만 해도 오글거린다. 그래, 맞지 않는 옷이나 다름없지. 차라리 애리면 모를까, 저는 무리다.
클럽 쪽으로 가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헉 소리가 나온다. 며칠 전, 다른 클럽 골목 어귀에서 마주쳤던 또라이가 시호의 눈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담배를 삐딱하게 물고 낮게 내리깐 눈은 화보집을 보는 것 같았지만 멀쩡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하는 짓이 또라이 같았기에 멋있다는 생각을 바로 지워 버렸다.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난 시호는 표정 없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태윤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태윤은 잔뜩 경계 어린 시선을 즐기며 천천히 손을 들어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바닥에 재를 털었다.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느긋해서 시호는 피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한테 볼일이 있나? 아니지, 볼일은 무슨. 우연이잖아. 같은 곳도 아니고 다른 곳에서 만났는데. 이 넓은 땅덩어리에 클럽이 여기 한 군데뿐이겠냐고. 다니다 보면 마주치고 그러는 거지……가 아니잖아. 말이 돼? 어떻게 또 만나지? 클럽 죽돌이인가? 그런 죽돌이랑 연달아 마주친 나도 그럼 죽순이 된 거야?
시답잖은 생각을 펼치고 있을 때 태윤이 입을 열었다.
“왜 전화 안 했어?”
하, 이 사람이 정말. 또 알 수 없는 말 시작하네. 밑도 끝도 없이 생뚱맞게 튀어나온 물음에 시호는 정상적인 대화를 포기하기로 했다.
“내 마음이지.”
“기다렸는데.”
후, 하고 연기를 내뿜는 모습이 연기 사이에서 묘한 섹시함을 불러일으켰다.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간다. 주먹을 살짝 말아 쥐고 저 말도 안 되는 말에 답을 해 주기로 했다. 이건 정말이지, 과잉 친절이다.
“명함…… 잃어버려서…….”
버렸다고 하면 분명 기분 상해서 돌아갈 것이다. 그걸 알았음에도 버렸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 그리고 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건 사실이니까, 거짓말이 아니잖아. 스스로 다독일 때 태윤이 명함을 슥 내밀었다. 그때 봤던 검은색의 심플한 명함이다. 얼떨결에 받아 들자 흡족한 듯 살짝 미소 짓는다. 잠깐 보인 미소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남자가 저렇게 섹시해도 되는 거냐고. 저건 반칙 아니냐고. 여자들 열 트럭 울리게 생긴 거 다 취소야. 열 트럭은 무슨, 백 트럭은 울리겠구먼.
“이번엔 잃어버리지 말고. 소중하게 간직해. 귀한 거니까.”
이 명함이 무슨 보물이라도 돼? 시호는 딴지 걸고 싶은 것을 참고 명함을 손에 쥐었다. 계속 대꾸하다 보면 엮일 것 같으니까 적당히 엮이는 척하고 빠져나가야지 생각하는 순간, 태윤의 팔이 시호의 얼굴 쪽으로 향했다. 몸이 저절로 반응해서 태윤의 팔을 막자 미간에 주름이 진다.
“진짜 군인이면 곤란한데.”
태윤은 순순히 팔을 거두며 중얼거렸다. 가까이에서 보니 자신의 안목이 틀림없었음에 확신을 더했다. 그녀는 본인의 매력이 어떤 건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씨앗에 불과했다. 이 씨앗을 정성스레 가꾸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햇빛을 주면 분명 진한 향기를 뿜어 대는 아름다운 꽃이 될 것이다. 그 향기를 맡은 사람은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리라. 태윤은 확신했다. 그나저나 시호는 태윤이 자꾸만 자신을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가는 것이 영 거슬려서 그 말에는 반박하기로 했다.
“나 군인 아니고, 개인 취향이니까 신경 끄고, 일행 있으니까 먼저 갈게.”
“연락해. 기다리고 있잖아. 네 번호도 알려 주고 가.”
태윤은 말을 하며 주머니를 뒤적였지만 어디에도 핸드폰은 없었다. 아, 자리에 두고 왔나. 짜증스럽게 눈썹을 휘자 시호가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달라고 해도 안 줄 건데 저건 무슨 김칫국이지? 뭐라고 한마디 하려 입술을 달싹일 때 태윤이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 말하지 마. 외우는 거 귀찮으니까 그냥 네가 전화해.”
뭐, 이런……. 벙한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무시하는 게 낫겠어. 시호가 몸을 돌리려는데 태윤이 말을 이었다.
“진심이야. 너 괜찮아. 후회 안 해. 장담해. 돈도 될 거고.”
돈이 된다는 말에 우뚝, 멈춰 섰다. 태윤은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자리를 떠났다. 태윤이 가고 난 뒤에도 시호는 명함을 손에 꼭 쥐고 한참을 서 있었다.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서 세게 쥐고 있어도 구김 하나 없다. 진짜 돈이 된다고? 아니, 돈이야 되긴 하겠지.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을 모델로 해도 괜찮은 거야? 무슨 사진을 찍으려고 이러는 거지? 혹시 이상한 사진 아닌가? 야한 거, 누드나 뭐 그런 거…….
하지만 태윤과 누드 작가는 연상이 안 된다. 그는 왠지 자신을 닮은 사진을 찍을 것 같다. 사람을 한눈에 매료시키는, 위험한 향을 풍기는 그런 사진. 검색하면 나오려나. 생각이 미치자 핸드폰으로 검색하기 위해 꺼냈는데 마침 전화가 온다. 애리였다. 빨리 들어오라는 성화에 알았다고 대답하고 검색은 집에 가서 하는 걸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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