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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권

    2015.04.14 약 18.7만자 3,000원

  • 완결 2권

    2015.04.14 약 16.8만자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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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수신 하백의 하나뿐인 여동생 수휘. 천계의 망나니로 이름 난 천자 비사란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인간계로 도주를 결심하지만, 뭔가 일이 제대로 꼬여가고 있다. 어째서 조선의 세자빈이 되어 있는 거지?
“월하노인의 붉은 실. 그것은 운명과 연을 맺어주는 인연. 하지만 인연은 함께 만드는 것이지 결코, 홀로 이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사랑과 어긋난 사랑을 다시 되돌리기 위한 두 남자의 비밀스런 계약.
“너의 감정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될 것이다.”
“……상관없습니다.”
“네 인연에 대한 기억이 모두 망가질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그러길 바랍니다.”
“훗, 모든 것을 걸었다는 건가. 좋은 마음가짐이로군.”
과연, 그 끝에서 끊어진 붉은 실은 다시금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본문 중에서>

너무나도 태연하게 차 한 잔을 건네는 비사란의 모습에 하백은 자신이 애써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불안했다. 그것을 눈치 챈 비사란은 이내 찻잔을 내려놓고 피식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기색을 띠었다.
“차가 맛이 없나?”
“내가 좋아하는 차가 아니로군.”
“그래? 이런 상황에서도 농이라니 역시 내 동무다워.”
“이렇게 될 거라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주제에.”
하백의 말에 비사란은 어깨를 들썩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하백과는 달리 비사란은 다소 거칠고 강인한 남성미가 느껴지는 사내였다. 소문과는 달리 망나니라기보단 대단한 기백을 지닌 남자. 그는 강하게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로 하백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수휘는 인간계로 간 것인가?”
“왠지 자네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기분이라 아주 불쾌해.”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선 그녀를 얻을 수가 없지 않나.”
“갑자기 왜 수휘를 반려로 맞이하려는 거지? 그 아인 천녀가 아니야. 선녀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비사란은 하백의 말에 그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난 그녀가 꼭 필요해. 그녀는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한 여자이니까. 하백의 누이이자 서왕모의 딸. 나의 반려로써 충분하지.”
여전히 기분이 좋지 못했다. 비사란이 저토록 자신의 누이를 원하는 진정한 목적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안 그래도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동생이다. 남자라는 동물에 크게 한번 상처를 입었던 아이이니까. 그렇기에 그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남자가 곁에 있기를 바라는데. 비사란은 그런 남자라기보단 그조차도 속을 알 수 없는 너무나도 위험한 존재였다.
“한동안 날 찾지 말게.”
“무슨 소리지?”
비사란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마 위로 가볍게 몸을 맡기고서 의아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하백을 향해 말했다.
“한동안 이 천계에 있지 않을 생각이니까.”


<미리보기>

제법 많은 일이 스치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시각, 휼의 발걸음은 휘빈궁을 향하고 있었다. 혜월과 부부의 연을 맺고서 몇 번이나 휘빈궁을 찾았던가? 거의 손가락에 꽂을 정도였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혀 슬퍼하거나 서운한 내색 한번을 주지 않았다. 그래, 혜월은 마치 잘 만들어진 인형과도 같은 여인, 눈빛만이 서글프게 흐려져 있을 뿐 단 한마디의 말도 표정도 그 어느 감정하나 내비치지 않는 그러한 여인이었다.
휘빈궁 앞에 선 휼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때 한 상궁이 조용히 나와 머리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마마께선 지금 후원에 계시옵니다.”
“이 시각에 말인가?”
“예, 계속 갇혀 지내는 것이 답답하다 하시면서 달구경이나 하신다고…….”
“별로 볼 것도 없는 풍경이건만.”
휼은 조심스럽게 휘빈궁의 후원으로 걸음을 옮기었다. 봄이 찾아왔건만 이곳에 피어있는 건 오직 이름 없는 풀꽃뿐이다. 마치 이 궁의 자체가 혜월의 마음속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그렇기에 휼은 더욱 이곳에 오는 것을 꺼려했을지도 몰랐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혜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한순간 멈칫하였다. 아무것도 없이 무성한 풀꽃만이 휘늘어진 풍경이건만, 그 속에 서서 한줌도 되지 않는 초승달을 바라보는 그녀의 자태가 어딘지 모르게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 순간 혜월의 시선이 휼에게로 내려앉았다. 몇 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을까? 묘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가볍게 파고들어갔다.
“참, 서글픈 달빛이 아니옵니까?”
“빈궁만큼이나 말이요?”
“그런가요? 제가 저 초승달이었던가요.”
“…….”
“제법, 어여쁜 미소가 그려지는 달이 아니옵니까?”
휼은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음을 앞당겼다. 서서히 좁아지는 그들의 거리 속에 어느새 서로의 숨소리가 뒤섞여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그대의 이름에도 달이 있지 않소.”
‘혜 월’[暳月] 반짝이는 달빛
촛불을 하나 사이에 두고 휼과 혜월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들의 앞엔 작은 주안상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것에 손을 대지 않고 잠시 침묵을 지키다 이내 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빈궁이 쓰러지기 직전에 무엇을 하였는지 소상히 알려줬으면 하오.”
“기억이 나질 않사옵니다.”
“난 지금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요.”
“하오나, 신첩 정말로 기억이 나질 않사옵니다.”
촛불의 뒤로 살짝 가려진 그림자에 혜월의 눈동자가 사라져간다. 휼은 남몰래 주먹을 움켜쥐더니 이내 주안상에 마련된 술 주전자를 거칠게 붙잡아 술잔에 가득 부은 후 그것을 단숨에 들이켜고서 다시금 외쳤다.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더 이상 증좌가 나오질 않고 있어 빈궁의 증언밖에 더 이상 방법이 없단 말이요. 이건 그대를 위한 일이기도 하오.”
자신을 위한다는 말에 혜월은 비웃음이 새어나갈 뻔했다. 하지만 억지로 입 꼬리를 비틀어 웃음을 참아내고서 동그란 눈으로 휼을 바라보며 다소곳한 목소리로 말을 흘렸다.
“하오나 신첩, 정말로 모르는 일이옵니다. 설마 세자저하께 거짓을 고하겠사옵니까?”
더 이상은 진전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한 휼은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성큼성큼 문을 향해 걸어가다 이내 살며시 고개를 돌려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혜월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한마디가 날카롭게 그의 귓가로 파고들어갔다.
“하온데, 저하. 정녕 이번 일에 신첩을 위하는 마음이 들어있는 것이옵니까?”
차갑게 굳어진 표정으로 휘빈궁을 나서는 휼을 보며 한 상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늦은 시각에 휘빈궁에 오신 적이 없으셔서 뭔가 작은 변화가 생겼나 하는 기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역시, 두 분의 사이는 어느 때보다 더욱 꽁꽁 얼어 붙어버린 듯했다.
“세자라…….”
순간 초승달에 스미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한줌의 작은 빛 아래 뚜렷하게 보였던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묘한 느낌과 짙게 내려앉은 눈동자는 그 어떤 밤보다도 더 깊고 시리게 내려앉아 있었다.
“천계에서 혼인을 피했나싶더니 그런 남자랑 엮이게 생겼어. 젠장맞을.”
그녀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휼의 모습을 애써 털어버리고서 눈을 감았다. 내일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고 오랜만에 꽤나 머리를 써야 할 테니 말이다.
휘빈궁을 나선 휼의 표정이 무척이나 살벌하게 굳어 있었다. 옆에서 그것을 느낀 재원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그를 따를 뿐이었다. 아마 세자빈마마께서 아무런 증좌를 주지 못하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재원의 생각과는 달리 휼은 다른 것에 온 신경이 잡혀 있었다. 초승달 아래에 서있던 혜월의 모습,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어떠한 간질거림이 가슴에서 느껴졌었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묘한 미소를 지으며 서늘한 달빛아래 조화를 이룬 채 어우러졌던……. 아름다운 미색은 아니다. 그저 평범하고 오히려 연약한 외모의 세자빈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 모습마저도 흘러내리는 달빛 속에 반짝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가 흘린 한마디.
‘하온데, 저하 정녕 이번 일에 신첩을 위하는 마음이 들어있는 것이옵니까?’
마치 인형처럼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던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을 원망하는 듯한 감정이 뒤섞인 그러한 어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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